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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동열 일본 프로야구 성적

안녕하세요

선동열 선수 일본 프로야구 성적을 알아보겠습니다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NPB)에 도전한 계기는 해외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다고 느꼈고 이전부터 일본 진출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FA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구단의 허락 없이는 해외 진출이 불가능했으나(구단이 선수의 보류권을 갖고 있었음) 팬 여론 조사와 선동열 선수 본인의 강한 의지, 사회적 분위기 변화에 힘입어 구단이 해외진출을 허락하면서 일본행이 성사된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구단주와 경영진들의 의견 충돌, 일본 구단들과의 복잡한 협상 등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일본 진출전 시즌 1995년 선동열 성적

등판 : 48경기 

이닝 : 109/⅓ 

평균 자책점 : 0.49

선발 등판 : 0회

 

1992년 어깨부상으로 선발투수로서 오랜 이닝을 소화하기 어려워져 짧은 이닝을 집중적으로 책임지는 마무리 투수 역할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어깨부상으로 1993년, 1994년, 1995년은 마무리로 활약했는데 당시 마무리투수는 요즘처럼 1이닝을 던지는 게 아닌  여러 이닝을 책임지는 멀티이닝 마무리로 활약하게 됩니다. 

선동열 일본 프로야구 성적 (1996~1999)

연도별 연봉

이적료 : 3억 엔 (해태 타이거즈가 받은 금액)

계약금 : 5,000만 엔 (선동열 선수가 받은 금액) 

 

1998년, 1999년 연봉 2억 엔을 당시 원화로 바꿔보면 ( 당시 환율 100엔, 532.4원 기준) 10억 6,480만 원으로 지금 기준이나 1999년 기준이나 아주 큰돈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거품이 심하다는 KBO 기준으로 연봉 10억 이상을 받는 선수는 14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1996 : 일본 진출 첫 해, 스트라이크 존과 일본 타자들의 뛰어난 선구안에 적응하지 못해 부진하였고 시즌 중 2군에 강등되고 패전처리로 등판하는 등 자존심에 근 상처를 입은 시즌입니다. 평균 자책점 5.50으로 KBO 시절과 비교하면 매우 부진했지만 FIP(2.62), K/9(11.17) 등 세이버 지표는 크게 나쁘지 않았죠. (심리적 압박, 문화적 적응 실패, 투구폼 변화 등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음)

(FIP : 투수의 능력을 수비력과 무관하게 투수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결과를 반영해 산출하는 지표 (투수의 순수한 투구 능력) (K/9 : 투수가 9이닝(한 경기 기준) 동안 평균적으로 몇 개의 삼진을 잡아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1997년 : 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부활하였습니다. 가끔 1997년 기록을 보면 39 세이브로 되어있는데 공식 성적은 1승 38세이브입니다. 당시 일부자료에서 구원승(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해 승리한 경기)을 세이브로 포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사키 가즈히로와 세이브 공동 1위를 했으며 제구력과 위기관리 능력 모두 인정받았고  일본 현지에서 '나고야의 수호신'이라고 불릴 정도로의 압도적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국내에서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명은 한국 언론과 국내 기자들이 선동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 별명이며 일본 현지팬들은 '호빵맨'이라는 별명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과거 영상을 보니 해설자가 1997년 세이브 2위라고 말하는데 공동 1위 자체를 2위로 오 기록하는 사례가 꽤 있었습니다)

 

1998년 : 시즌 내내 안정적인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후반 승부처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고, 1997년과 같이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정상급 구위와 위기관리 능력을 증명하였습니다. 1998년 시즌에도 부상 없이 꾸준한 등판을 하였고 패전 없이 시즌을 마무리하였어요. 

 

1999년 : 구위 저하와 노소화 조짐, 이닝 소화율 감소, 3경기 연속 블론세이브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시즌 중 2군 강등도 경험하였어요. 주니치가 새로운 마무리 투수를 영업하였는데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기여한 뒤 은퇴를 선언. 시즌 후 메이저리그(보스턴 레드삭스) 진출 제안도 있었으나 현역 은퇴를 결정하였습니다 (1999년 한국 나이 37세) 1999년을 망한 시즌처럼 작성한 것 같아 추가하자면 1997년, 1998년에 비해 살짝 부족했던 것이 주니치 드래건스 센트럴리그 정규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세이브 순위 2위를 기록하며 활약했습니다. 

 

KBO 레전드 투수가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일본 리그에 진출하며 3년 연속 20세이브,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리그정상급 기록을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있었지만, 일본 리그에 맞춰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고, 제구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며 결국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인정받았어요. 선동열의 성공은 한국 야구에도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더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KBO 올타임 레전드.. 무등산폭격기 선동열 선수 일본 성적을 알아봤습니다.